주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오는 감당할 수 없는 희열을 제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
불편한 상황 가운데서 긍휼한 마음 주시니 감사 (김00 님의 아내 심00 님이 불교 얘기를 해서 제 영혼이 불편한 순간에도 김00 님을 향해 긍휼한 마음 주신 하나님) -> 깨달음. 기도에 적용!
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저를 irritating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 때문에 그가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오는 감당할 수 없는 희열을 제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
불편한 상황 가운데서 긍휼한 마음 주시니 감사 (김00 님의 아내 심00 님이 불교 얘기를 해서 제 영혼이 불편한 순간에도 김00 님을 향해 긍휼한 마음 주신 하나님) -> 깨달음. 기도에 적용!
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저를 irritating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 때문에 그가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제 욕망(신체의 욕망, 세상의 욕망-매슬로우 참조)을 모두 채우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자각'의 의미)이 제 습관이 되기 원합니다.
- 신체의 욕망: 식욕, 좋은 옷 입고 싶고 좋은 차 타고 싶은 것 등의 physical하고 material한 것. (색에 대한 유혹도 해당)
- 세상의 욕망: 인정의 욕구(인정투쟁-헤겔), 자아실현의 욕구 등
욕심이 제 영이 바라보는(향하는) 많은 것들을 가립니다.
제게 유혹으로 다가오는 죄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기를 원합니다.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발전이 아닌 신앙생활의 발전
제 기도가 산으로 가지 않게 하시고 제 영혼이 구하는 바를 찾도록 하시옵소서
기도의 방법 뿐만 아니라 기도의 방향까지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가난하고 화목한 가족은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받지만, 대개의 부유한 가족은 그렇지 않다. 화목과 겸양이 부를 압도하기 전까지 부유한 가족은 이 강점을 놓치고 있다.
어쩌면 가난한 가족은 가난 때문에 작은 화목이 더 두드려져 보이는지도 모른다. 가난의 정도가 심할수록 작은 화목이 더 커보인다.
졸음이 지난 밤의 잠을 지나(through)온 오늘아침, 오전 내내 날 붙잡고 있었다.
졸음: 내 발목을 붙잡고 걸음 걸이를 느리게 만든다
제 생각이 앞설 때 저를 멈추게 하시고, 아무 생각도 없을 때 (당신 생각으로) 저를 이끌어 주세요.
시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시간 속에서 감지
시간 위에 서려 하지 않고, 시간을 창조하신 당신의 섭리와 계획을 시간 속에서 보기를 원합니다. 저를 그것(시간 속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맞춰주세요.
시간 속 내 계획에서 엊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간 속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을 경계하게 해주세요.
나태와 오만 모두 경계: 나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시간 아래 놓이지 않게 하시고, 시간을 내 계획 아래 정복했다는 오만에 빠지지 않게 해주세요.
갈등으로 점철된 그러한 대화의 방법에서 탈피하게 해주세요. (대화의 절름발이 경험을 회상하며)
반성과 통찰의 시간을 놓치지 않게, 그 안에서 기회를 잡게 (예배하는 곳과 예배드리는 시간이 없는 곳에서 즐거움을 누린 후에)
제게 주시는 능력들로 말미암아 자기애에 빠지지 않기룰 원합니다. (이스탄불에서 읽었던 프랑수아즈 사강을 떠올리며)
아찔한 정도의 즐거움이 찾아올 때: 바로 취하지 않고, 먼저 묻기 "이 아찔할 만큼의 즐거움을 제게 허락하십니까?"
그리고 취하기 전에 감사해 하기 -> 빠드리지 말 것! 습관으로 삼을 것.
* 아찔한 정도의 즐거움: 스탕달 시드롬 정도에서 그치길 원합니다.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제 감성과 영성을 자극시켜 주시옵소서. 예: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을 통해서, 영화, 독서, 대화(대담의 수준을 바라는가?) 등을 통해서
다니엘 서에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우상)에 절하도록 강요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지는 상황) "주께서 지켜주실 겁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
이번 취업도 내가 잘나서 된거 아니란 거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운 좋게 얻어걸린겁니다"고 하고, 그리스도인들께는 "이곳에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욱 기대하게 됩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직장생활 자세를 가지게 되더라고.
어느 곳에서 시작하든 비전을 잃지 않겠다! 다니엘 서를 6장까지 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믿지 않는 이들의 마음과 입으로부터 하나님 찬양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 이것이 내 일생일대의 비전이 될수도 있겠구나...
아직 말로 다 못한 꿈과 계획들이 많아~ 내가 어느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든, 어느 조직으로 또 가게 되든, 무슨 일이 맡겨지든 우선 감사하고 그곳에서 비전을 또 구하게 돼!
설령, 내가 원치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를 고단하고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https://www.youtube.com/watch?v=BAnN4xLZDic&feature=youtube_gdata_player
삶의 고단과 인생의 굴곡을 사모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나중에 쉐어할게^^ 요건 사무엘서와 다윗의 시편 읽다가 묵상하고 가지게 된 자세! ㅎ
Q>
억압과 통제, 군기반장, 잘잘못을 따지는 일.
여기에 몰두하는 이를 대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A>
대화는 정말 좋은거 같아. 상대방을 더 알아갈 수 있잖아. 관계 심화의 걸림돌을 그냥 두고 지나치지 않게 하기에 올바른 길로 나아갈수 있나봐 ㅎ
이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하고 또 때로는 고집을 부려가며 내 의견을 우위에 두려는 유혹에 빠지곤 해. 하지만 그건 언제나 날 더 불편한 곳으로 이끌어. 정말이지 차이점을 확인해 나가며 동일성을 찾으며 내가 누군가에게 깊어지는 길에 갈등이 작았으면 좋겠어. 교회 뿐만 아니라 직장과 다른 공간에서, 친구 뿐만 아니라 상사나 연인을 대할때도...
내가 고민하고 풀고자 하는 관계의 숙제를 내가 얻는 해답 이상의 해답을 네게 베풀어 주시기룰 바라며...아듀2012 ㅋ
입술로만 달려나가지 않게 하시고 한 호흡 쉬면서
제 영혼의 간구가 제 입술에 담기게 해주세요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의 눈물이 하나님 사랑의 감격의 눈물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그 어떤 눈물도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제 몸에 걸치고 제가 거하고 손에 들며 사용하는 모든 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격을 담는 도구가 되게 해주세요
지금 누리는 즐거움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되기 원합니다
제 영혼이 즐거워하는 자리에 저를 늘 둬주세요
안타까움와 마음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기도함으로 그곳이 제 영혼이 즐거워하는 자리가 되게 해주세요
문제가 제게 있는 것입니까?
분별력을 주신 것입니까? 반항심을 주신 것입니까?
KB교회 금요 철야예배 첫 참석
제 입술을 열어 구하는 것들이 제 마음과 달라지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I.
제로섬 전제에서 상대방이 부담할 agonizingly volatile emotion까지 내가 떠안겠다고 다짐할 때, 내가 느끼는 건 (1)고립된 감정의 fluctuation과 (2)순진한, 혹은 단순한 착각과 (3)나 자신의 특이한 취향일 수 있다.
제가 짊어질 그 감정의 괴로움, 하나님께서만 아십니다!
허상이라도 좋으니, 제 끼를 잠재우지 마소서! 단, 하나님은 절대 허상일 리 없다.
II.
내가 녹아내리는 것과 나 자신을 내던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
LH: 넌 결코 날 위해 너 자신을 포기할 사람이 아냐.
HJ: (무언으로 동의한다.)
이 사건 이후, 신앙을 가지게 되고(할렐루야!) 사도 바울 스타일로 신앙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상상을 가끔 해봤는데, 그 역시 단타성 결단과 의지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던져지는 게 아닌, 차라리 그 자리에서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