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14, 2018

TV보다는 책과 음악 (2018.04.14.)

요 며칠 출근 전 아내의 육아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아침식사 차려놓고(첫째 아침도 같이) 출근, 퇴근 후에는 저녁식사 차리기, 애들 보고(저녁 먹이기, 기저귀 갈기 등) 잠들기 전 씻기기, 애들 잠든 후 가사일(설거지, 간단 손빨래, 정리정돈 등) 했다니 오늘은 머리가 띵하다. 할 일은 많은데 아내는 내가 왔다고 밥 먹고나서 잘때까지 TV만 본다. 둘째 분유 먹이면서 집안일 좀 도와달랬더니 성질을 부린다.

교류할 수 있는 게 적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템포를 조절해가며 내가 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다. 문제는 상대방을 향한 내 마음의 문이 닫히고 있다는 거다. 나누고픈 사소한 이야기, 삶의 단상들, 공유되는 취향.. 이런 것들이 점점 작아진다.

취향은 결혼 전부터 이미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는 서로의 취향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관계(결혼 전의 연인관계든, 결혼 후의 부부관계든) 초기에 우리는 각기 자기 취향의 우월성으로 우리 둘의 취향의 일원화(정반합의 변증법적인 방법이라기보다는 정복자의 취향에 의해서 피정복자의 취향이 말살되어 버리는 방식의 일원화)를 위해 심하게 투쟁한 거 같지 않다. 다른 체로 공존해 왔는데 상대를 긍정(인정 그 이상)하며 옹호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TV에 대한 내 거부감(TV는 무익하고 시간낭비이며 차라리 없는 게 낫다. TV로 얻는 오락을 책이나 음악을 통한 방법으로 대체한다면 훨씬 유익할 것이다. 하찮은 예로, 문장이 아름다운 고전문학 독서를 하며 감동받은 부분을 여러차례 읽으며 마음에 새기면 내 말이든 글이 이를 흉내내게 된다. 독서의 효용으로 꼽는 '표현력이 좋아진다'는 의미이며, 읽는 책의 종류에 따라서 '표현력'이 '논리력'이 될 수도 있다. 독서하는 와중에 내 사유를 덧붙이며 발전시키면 '사고력'이 좋아진다. 이 종합적인 과정에서, 그간 읽어온 책들에서, 어느 책을 읽을 때 시작되어 다른 책들을 읽는 내내 계속 진행된 내 사유가 특정 문제에 있어서 '창의력'으로 발휘될 수 있다.)이 그래서 종종 갈등을 유발한다. 누가 나에게 TV보다 책과 음악을 더 고급문화라고 여기며 우월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그 누군가는 날 꽉 막힌 사람으로 보겠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만하다.

책과 음악에 대한 내 선호(취향)는 귀족스러운 이미지 때문이라기보다는 효용 때문이다. 어쨌든 TV에 대한 내 비호감(이 역시 취향의 문제다.)은 종종 갈등을 유발하는데, 그 이유 역시 효용이다. TV시청은 결과적으로 남는 게 없다. 향유(특정 TV 프로그램 및 시리즈물의 특성 상 거르지 않고 전편을 제 시간에 시청하는 덕후들은 중독되었다고 볼만하기에 향유를 넘어 탐닉에까지 이른다.)하는 시간 후에는 허무와 내 날아간 시간만 남는다. TV시청 과정의 즐거움을 유익으로 내세우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인 허무를 극복하려면 TV가 아닌 그 대체물에서 유익을 얻는 편이 낫다. 그것이 내게는 책과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 독서와 음악감상에서 감동을 느껴보고 몰입을 경험해 본다면 TV시청의 즐거움을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몰입과 감동이 오기 전까지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도전적이며 한번 해볼만 하다.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지루하고 어떤 감흥도 없다면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다: (1)그 책을 읽어낼 내 깜냥이 부족하거나, (2)그 책이 짜임새 없고 주제도 불명확한 너저분한 책이거나, 아니면 (3)그냥 그 책이 나랑 안 맞는 거다.
(2)번을 피하기 위해서 클래식(고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도움이 된다. (1)번이 문제라면 우선 책을 잡고 인내를 가지며 읽어나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 후에 닥치는대로 읽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3)번의 경우라면 나중에 다시 읽으면 또 색다를 거 같다.

책 읽는 습관를 기르며 다독한다? 취지는 좋으나 사람은 누구나 노화하며 (전문 작가그룹이나 뒤늦게 부각을 나타내는 우수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감수성도 무뎌진다. 따라서 반짝반짝하는 시기가 있다. 나는 그 시기가 학령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의 독서습관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길을 잘 닦아놓으면 독서를 통한 한 인간의 발전은 무궁하다시피 하다. 그는 자기발전의 길을 안다. 그 길이 얼마나 멀리 뻗어 있는지 그 길을 가는 내내 끝이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왠만한 책은 난 사서 읽는다. 새 책만 고집하지 않는다. 책 사는 걸 좋아한다. 읽고 처분하지 않는다. 책장에 쌓아둔다. 읽지 않고 사둔 책도 많다. 개중에는 산지 10년만에 집어든 책도 있다. 혹자는 이런 날 미련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런 방식으로 나만의 독서문화를 만들고 싶다. 여유 공간이 많은 커다란 책장을 갖고 싶다. 어느 방 한켠의 공간에 들어앉은 책장보다는 거실의 벽면을 채우는 책장이 되었음 좋겠다. 눈으로든, 손으로든 더 손쉽게 접하고 싶다. 우리집에 방문하는(혹은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이 아니다. 내게 생활의 일부가 되는 바로 그 방식이다. 우리집을 찾는 손님이 책에 관심을 보이면 함께 얘기 나누고 서로 빌려주고 빌려읽는 건 덤이다.

(2018.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