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4, 2020

주안어록_2020.01.03.

#주안어록 2020. 01. 03.

어록 1 : (아빠가 까주는 귤을 손으로 받기고 하고 입으로 받아 먹기도 하며) "입이 버스고 귤이 손님이야." ☞ 역할놀이를 자연스럽게 즐기게 된 주안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 그 중에서 버스를 떠올리며 하게 된 상상
어록 2 : 미역국이 담긴 흰색 그릇 묘사 ☞ "물이 파도고 접시가 모래야." (의역 : 미역이 들어 있어서 역동적으로 보이는 국물이 파도치는 바닷물이고, 흰색 그릇의 rim 부분은 백사장이다.)

A = a 이고, B = b 이다. 라는 대구 구조다. A-B의 관계와 a-b의 관계에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공통점의 크기보다 차이점의 크기가 클 때 혹은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주는 인상이 강하지 않을 때, 이 대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구로 구성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A와 B는 현실의 사물들이며,  a와 b는 상상 속의 객체들이다. a-b가 맺는 관계 혹은 a와 b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짧은 스토리나 그 둘의 대화 등등)를 A-B에 적용해 보는 것도 재밌다.

대구 뿐만 아니라 다양한 표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대화와 작문을 해나가는 우리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다! 표현이 일어나기 위해선 먼저 관찰이 있고 그 다음에 상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얘들아~ #사랑해

Sunday, December 29, 2019

10년 전에 책을 한권 읽었는데_2019.12.28.


1.
어제 #googlecalendar 가 #알람 을 하나 띄웠는데, 생소하다. #공유일정 이 아닌 내가 적어둔 게 맞긴 한가보다. 그래서 #책장 에서 저 #책 을 찾아 해당 페이지를 펼쳐봤다.

2.
결과적으로 나는 해당이 안 된다. 2009년 하반기에 강의를 들은 사람 중 #초대장 을 받은 사람만 초청받은 거다. 하지만, 나는 왜 이 일정을 적어두었을까? 그것도 당연히 참석하는 사람인것마냥 말이다. 그 당시엔 대상조차 안된다는 판단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보단 자격요건 미달을 '열정'으로 상쇄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10년간의 #성공담 을 꿈꾸며 말이다. (수험서 및 각종 교재를 제외하고 책에 낙서 기록 메모를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유일하게 책에 적어두는 건 책의 독특한 수집경로와 이 책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읽었는지다. 그런데 이마저도 #독서메모 를 스마트폰으로 하게 되면서 사라진 습관이다. 그런데 이 책은 기록도 저장된 파일도 없다. 습관의 변화기에 #기록의공백 이 있었음이라. 따라서 기억하기론) 내가 이 책을 읽은 게 2009년 혹은 2010년경이다. 그렇다면 그 때의 내 모습은 어떠했던가?

3-1.
스물아홉 혹은 서른의 #백수 였으며 늦은 대학 졸업 후 #어학연수 를 1년 조금 넘게 다녀온 직후다. #비전 을 찾지 못했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같은 인생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비전과 멘토의 부재'가 이 시기 나를 설명하기 딱 좋은 표현인듯 싶다. 초등학생 과외, 영어학원 강사, 보험영업, 배달 아르바이트 등을 거치며 길을 찾던 시기다. 관심분야는 있었지만 그 쪽으로 뚫고 나갈 힘(정보력, 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멘토 등이 떠오르는데 이는 '힘' 중에서도 외부의 힘이니 지금에 와서는 상황을 탓하는 그저 핑계로 보일 뿐이구나!)이 부족했다. 
3-2.
그나마 다행인 것은 J라는 중학교 동창 친구를 따라 #교회 에 꾸준히 출석하게 됐다는 점이다. 당시의 #신앙생활 과 신앙간증은 여기에서는 하지 않겠다. 당시 글을 적던 블로그에 그때 내 삶의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김남조 시인의 #설일 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딱 그때의 모습이다:
--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임마누엘 (그 분이 나와 함께 계시다!)을 매일 경험하며 살았다. 그러다 길을 찾게 됐으며 아직도 #하나님 께 서원하듯 #기도 한 내용(목회자의 길은 아님)이 선하다. 불안정한 신분이었지만 전혀 불안해 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교회에서 같이 #봉사활동 하던 청년들과 봉사 후 #올림픽공원 #소풍 을 가서 신나게 찬양부르며 놀다 대전에서의 입사 #필기시험 에 늦어서 시험장 앞에서 들어가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나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책함 없이 그저 즐거웠다. 
4.
#외동아들 로 자라며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컸는데 하나뿐인 아들이 취업도 못하고 장가가는 건 더욱 소원한 채 내 입장에선 인생을 허송할 뻔, 부모님께는 불효할 뻔했는데 #취업 도 하고 #장가 도 가고 #자녀 도 둘이나 기르고 있다. 이 정도면 #역전 아닌가? 소소하지만 지난 10년의 성공담을 이야기할법한가? 그래서 내일 #리츠칼튼 호텔에 갈까? 를 생각하다 그냥 가족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https://www.instagram.com/p/B6qQSG-pwEn/?igshid=p1rb2au6dm6w

Saturday, December 28, 2019

혼자놀기 : 영화관람 후 혼밥_2019.12.13.

1.
와이프가 애들 데리고 외출해서 #육아부담 없이 #영화 를 #관람 했다. 오늘 본 영화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 이 넘치는 #레이싱 영화, #포드v페라리 !
2.
#스피드 를 담아낸 장면이 많고 저음의 #엔진소리 가 매력적인 이 영화는 누가 뭐래도 영화관용 영화다. 그리고 구성과 전개와 인물묘사의 관점에서는 #흥미진진 한 #드라마 다.
3.
영화 속에는 거대조직의 역사적 숙명과도 같은 #관료제 의 폐해가 드러나고, 기성사회와 타협할 줄 아는 삶의 기술을 익히는 주인공의 #성장 도 보인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부분은 #한계 에 관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사용하는 기계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내겐 #카메라 일 것이다.
4.
영화보고 #뭐먹지고민 하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국수집 에 갔다. 애들 데리고 몇 번 간 적 있는데,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께서는 아이들의 근황도 물어보신다.
이로써 #오늘 의 #혼자놀기 #끝
차에서 잠든 애들을 데리고 오며 와이프에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 모임은 언제야? 좀 더 자주 봐^^"

Saturday, April 14, 2018

TV보다는 책과 음악 (2018.04.14.)

요 며칠 출근 전 아내의 육아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아침식사 차려놓고(첫째 아침도 같이) 출근, 퇴근 후에는 저녁식사 차리기, 애들 보고(저녁 먹이기, 기저귀 갈기 등) 잠들기 전 씻기기, 애들 잠든 후 가사일(설거지, 간단 손빨래, 정리정돈 등) 했다니 오늘은 머리가 띵하다. 할 일은 많은데 아내는 내가 왔다고 밥 먹고나서 잘때까지 TV만 본다. 둘째 분유 먹이면서 집안일 좀 도와달랬더니 성질을 부린다.

교류할 수 있는 게 적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템포를 조절해가며 내가 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다. 문제는 상대방을 향한 내 마음의 문이 닫히고 있다는 거다. 나누고픈 사소한 이야기, 삶의 단상들, 공유되는 취향.. 이런 것들이 점점 작아진다.

취향은 결혼 전부터 이미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는 서로의 취향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관계(결혼 전의 연인관계든, 결혼 후의 부부관계든) 초기에 우리는 각기 자기 취향의 우월성으로 우리 둘의 취향의 일원화(정반합의 변증법적인 방법이라기보다는 정복자의 취향에 의해서 피정복자의 취향이 말살되어 버리는 방식의 일원화)를 위해 심하게 투쟁한 거 같지 않다. 다른 체로 공존해 왔는데 상대를 긍정(인정 그 이상)하며 옹호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TV에 대한 내 거부감(TV는 무익하고 시간낭비이며 차라리 없는 게 낫다. TV로 얻는 오락을 책이나 음악을 통한 방법으로 대체한다면 훨씬 유익할 것이다. 하찮은 예로, 문장이 아름다운 고전문학 독서를 하며 감동받은 부분을 여러차례 읽으며 마음에 새기면 내 말이든 글이 이를 흉내내게 된다. 독서의 효용으로 꼽는 '표현력이 좋아진다'는 의미이며, 읽는 책의 종류에 따라서 '표현력'이 '논리력'이 될 수도 있다. 독서하는 와중에 내 사유를 덧붙이며 발전시키면 '사고력'이 좋아진다. 이 종합적인 과정에서, 그간 읽어온 책들에서, 어느 책을 읽을 때 시작되어 다른 책들을 읽는 내내 계속 진행된 내 사유가 특정 문제에 있어서 '창의력'으로 발휘될 수 있다.)이 그래서 종종 갈등을 유발한다. 누가 나에게 TV보다 책과 음악을 더 고급문화라고 여기며 우월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그 누군가는 날 꽉 막힌 사람으로 보겠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만하다.

책과 음악에 대한 내 선호(취향)는 귀족스러운 이미지 때문이라기보다는 효용 때문이다. 어쨌든 TV에 대한 내 비호감(이 역시 취향의 문제다.)은 종종 갈등을 유발하는데, 그 이유 역시 효용이다. TV시청은 결과적으로 남는 게 없다. 향유(특정 TV 프로그램 및 시리즈물의 특성 상 거르지 않고 전편을 제 시간에 시청하는 덕후들은 중독되었다고 볼만하기에 향유를 넘어 탐닉에까지 이른다.)하는 시간 후에는 허무와 내 날아간 시간만 남는다. TV시청 과정의 즐거움을 유익으로 내세우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인 허무를 극복하려면 TV가 아닌 그 대체물에서 유익을 얻는 편이 낫다. 그것이 내게는 책과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 독서와 음악감상에서 감동을 느껴보고 몰입을 경험해 본다면 TV시청의 즐거움을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몰입과 감동이 오기 전까지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도전적이며 한번 해볼만 하다.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지루하고 어떤 감흥도 없다면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다: (1)그 책을 읽어낼 내 깜냥이 부족하거나, (2)그 책이 짜임새 없고 주제도 불명확한 너저분한 책이거나, 아니면 (3)그냥 그 책이 나랑 안 맞는 거다.
(2)번을 피하기 위해서 클래식(고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도움이 된다. (1)번이 문제라면 우선 책을 잡고 인내를 가지며 읽어나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 후에 닥치는대로 읽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3)번의 경우라면 나중에 다시 읽으면 또 색다를 거 같다.

책 읽는 습관를 기르며 다독한다? 취지는 좋으나 사람은 누구나 노화하며 (전문 작가그룹이나 뒤늦게 부각을 나타내는 우수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감수성도 무뎌진다. 따라서 반짝반짝하는 시기가 있다. 나는 그 시기가 학령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의 독서습관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길을 잘 닦아놓으면 독서를 통한 한 인간의 발전은 무궁하다시피 하다. 그는 자기발전의 길을 안다. 그 길이 얼마나 멀리 뻗어 있는지 그 길을 가는 내내 끝이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왠만한 책은 난 사서 읽는다. 새 책만 고집하지 않는다. 책 사는 걸 좋아한다. 읽고 처분하지 않는다. 책장에 쌓아둔다. 읽지 않고 사둔 책도 많다. 개중에는 산지 10년만에 집어든 책도 있다. 혹자는 이런 날 미련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런 방식으로 나만의 독서문화를 만들고 싶다. 여유 공간이 많은 커다란 책장을 갖고 싶다. 어느 방 한켠의 공간에 들어앉은 책장보다는 거실의 벽면을 채우는 책장이 되었음 좋겠다. 눈으로든, 손으로든 더 손쉽게 접하고 싶다. 우리집에 방문하는(혹은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이 아니다. 내게 생활의 일부가 되는 바로 그 방식이다. 우리집을 찾는 손님이 책에 관심을 보이면 함께 얘기 나누고 서로 빌려주고 빌려읽는 건 덤이다.

(2018.04.14.)

Tuesday, April 18, 2017

로마서 8:24-25 묵상 (2017.4.18.)

아멘, 25절 아무리 읽어봐도 이해가 안 돼서 24절도 읽고 다른 번역본(NASB; 뉴 아메리칸 스탠다드 바이블)도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의미가 더 나타납니다 ㅎ 바울은 정말 천재인거 같아요!

(개역개정)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공동번역)
24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NASB)
24 For in hope we have been saved, but hope that is seen is not hope; for who hopes for what he already sees? 25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see, with perseverance we wait eagerly for it.

(NIV)
24 For in this hope we were saved. But hope that is seen is no hope at all. Who hopes for what he already has? 25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yet have, we wait for it patiently.

<24절> 
ⓐ (선언, 대전제, 기본명제) "우린 보이지 않는 소망(hope, 명사)에 의해 구원받았다."
ⓑ 소망에 대한 부연설명 : (주장) "보이는 것은 소망(hope, 명사)이 아니다." → (근거) "보이면 누가 바라겠느냐(hopes, 동사)? 보이는 것에 누가 소망을 두겠느냐?"
NIV에는 "누가 이미 가진걸 소망하느냐(hopes, 동사)?" 라고 되어 있음.

<25절>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hope, 동사),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기다린다."


24절 상반절의 소망은 명사이고 기독교 신앙의 일반원칙을 얘기하는 거 같은 반면에, 그 이후부터 '소망'은 동사형으로 쓰이며, 현재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신자들에게 권면하는 데 쓰인다. 

24절 하반절을 NIV로 보면 "누가 이미 가진걸 소망하느냐(hopes, 동사)?" 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보이는 것은 더이상 소망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되고, 소망하는 것은 보이지 않으며 아직 획득(?)되지 않은 계속 바라는 것이 된다.

25절의 권면을 받은 성도는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기다리면 결국 눈으로 보게 된다?

하나님이 어디 있냐며 하나님 경외하지 않고 제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조롱하여도 신자는 보이지 않는 소망에 의해 구원받았음을 믿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그 믿음으로 인해 참고 기다릴 수 있다는 내용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볼 수 있을지도(!)

제대로 읽은건지 모르겠지만, 바울의 글들은 묵상할수록 깊이가 느껴지고 경탄하게 됩니다ㅋ 좋은 말씀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Thursday, December 15, 2016

2016.12.15. 브랜드 네이밍 아이디어

ㅇ 제안 브랜드 : 스터디 스테이션

- 고객 특성 파악 : 수험생, 학생, 취준생 등 공부하러 오는 사람이 대다수라면, 공부study 에 대한 특화, 부각 필요 ☞ 유사사례 : 스터디플래닛 http://studyplanet.co.kr 세련된 독서실 같아요
- station 의 의미 : 정주의 의미 포함, 영속성. 공부하러 가끔씩 찾는 이들에게 '스터디 스테이션'은 항상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뉘앙스 준다. ☞ 유사 성공사례: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 정말 네이밍 좋다!
- 향후 가맹사업 시 이점 등 장기적인 안목의 차원에서 사업, 공간의 목적이 뚜럇한 게 유리해 보입니다.

ㅇ 활용방안 

- 카페형 독서실 스터디 스테이션
- 책과 커피가 있는 스터디 스테이션
- 스터디 스테이션 ㅇㅇ점, 스터디 스테이션(ㅇㅇ점)

Wednesday, December 7, 2016

2016.12.5. 하남스타필드 영업종료 후 귀가 시의 감상

내 생일은 양력 11월 26일인데, 올해 생일에 와이프는 털 달린 어그 슬리퍼를 깜짝 선물했다. 신어보니 신발이 작다. 와이프가 주안이 데리고 처가에 가 있는 동안 난 할머니와 어머니 모시고 신세계 하남점에 갔다.(2016.11.30.) 스타필드 쇼핑몰 구경시켜 드릴 겸 신발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PK마켓과 이마트트레이더스, 스타필드 쇼핑몰을 구경했고, 신발은 못 바꿨다. 다른 사이즈가 없었다. 환불도 못 했는데 환불하려면 결제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결제카드를 가지고 스타필드에 다시 갔다.(2016.12.5.) 이번에 동행자는 민수다. 민수는 액션캠을 백팩 어깨끈에 달고 왔고, 민수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곤 민수를 피해갔다.
신발을 환불하고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이토피아'에서 '문배동육칼'을 먹고 후식으로 '스무디킹' 망고스무디와 '앤티앤스' 치즈스틱을 먹었다. 쇼핑몰 여기저기 구경하다 민수 아는 사람이 '스포츠몬스터'에서 알바한다고 해서 그를 보러 갔다. 민수가 그에게 문득 말했다. "몇 시에 끝나? 집에 같이 가자." 졸지에 일행이 한 명 늘었다. 그는 22시에 끝났고 우리는 1층 '위드미' 편의점에서 보기로 했다. 덕분에 스타필드 영업종료 분위기를 경험했다.

이 날은 월요일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고, 22시가 넘어 스타필드를 나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퇴근하는 종업원들로 보였다. 민수 친구(나이는 많이 차이나지만 편의 상 친구로 호칭)를 기다리는 동안 스타필드 외벽에 수많은 작은 금속조각들이 붙어 있고 바람이 불면 이 작은 조각들이 바람따라 춤추듯 움직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민수 친구를 만나고 우린 귀가했다. 그들은 1번 버스를 타러 스타필드에서 조금 떨어진 정류장으로 행했고, 난 23번 버스를 타러 신세계 앞으로 걸어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일을 마친 직원들이 눈에 띈다. 퇴근하는 종업원들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20대 같다. 정규직원이 아니라 알바도 있는 것 같다. 매장 마감 업무를 맡은 젊은 직원들.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달이면 37살이 되는 아기아빠 강호중이 이들과 같은 입장이라면 어떨까? 20대 초중반 젊은 친구들의 일자리 틈바구니에 끼어든 30대 후반의 가장. 내게 이 일은 생존의 최종수단일 것이다. 그러면서 삶의 고단함과 그로 인해 미래를 볼 수 없는 비전의 상실감에 고통스러워하지 않을까? 

☞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피곤하다. 밤 10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려니 당연히 피곤하다. 하지만 그들은 고소득자가 아니다. 소비를 충분히 향유하지 못한다. 22시 퇴근이면 다음날 오후 출근이거나 오전 늦게 출근할 수도 있다. 소득이 적기 때문에 그 시간에 지출이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없다. 버스에서 친구와 통화해서 술약속을 잡는 젊은이를 봤다. 고작 해봐야 그거다. 퇴근 후 친구들과 어울리고 다음날 또 다시 출근하는 일상. 퇴근 후 시간을 풍요롭게 활용하기 힘들다. 

청소년(혹은 청년)기의 주안이가 방학을 맞아 알바나 파트타임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될 때, 사회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느끼고 어른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같이 근무하는 또래(혹은 형 누나들)와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맡겨진 일에서 책임감을 찾을 것이다. 그 일의 가치와 요구되는 역량, 자신의 흥미와 커리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눈 앞의 일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부모된 입장에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잠깐 하는 일인데 니 인생을 전부 거는 거 같구나.", "이 일이 니 평생의 일이 될까 걱정이 된다.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더 찾아보지 않으렴?", "알바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새벽 늦게까지 놀고 낮에 자고 오후부터 밤까지 또 알바하고, 알바하는 동안 생활이 이렇게 반복된다면 알바로 인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거 같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아니면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

내가 꼰대가 되려나? 저소득 낮은 질의 비정규 일자리에 매몰된 젊은 세대가 처한 위험은 비전의 상실, 생활의 피폐화다. 여기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여가를 즐긴다. 노동의 질에 따라 여가는 삶을 더 고착화시킨다. 돈이 없는 저소득자는 고급스포츠와 문화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없다. 자기계발도 어렵다. 그의 즐길거리는 고작 PC방 밤샘 정액제 요금 정도의 수준이다. 비극이지만 사실이다. 생활의 피폐함를 저당잡히고 즐기는 저렴한 여가를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은 누구나 여기를 즐긴다고 한 말은 이 때문이다. 독한 사람, 공부밖에 모르는 고시생(공시생), 당장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슨 일인지 알고 다른 데 관심 빼앗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능하다. 이들은 저소득 여가의 늪에서 나올 수 있다. 

여가는 관심을 두는 데서 출발하는 데 너무 많은 곳에 관심을 빼앗기지 않기를 원한다. 산만한 관심을 지양한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자기 부인(self-denial)'이 나온다. 자기 부인의 영역을 혼자 있을 때, 나 자신에 대한 자기 부인으로 보고 묵상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되었다.
- (기본전제) 내 안에는 선한 게 없다. 세상유혹 유흥을 찾아 나서지 않기
- 물건 구입 등 쓸데없는 데 관심두지 않기
- 새기, 예배(수요 금요 주일 등), 기도 등
- 독서

관심 자체를 예배와 기도에만 두고 쇼핑, 핸드폰 인터넷 등에 두지 않는 방법은 어떨까? 출퇴근 시간에 핸드폰 보지 않고 책을 보려는 의도적인 습관 만들기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작년(2015년)에 19권 읽었고, 올해는 12월 17일 현재  23권째 읽고 있다. 출퇴근시간 지하철에서 주로 읽는다. 
위에서 논의한 정도로 저소득층은 아니지만 난 여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단조로운 삶을 추구하며 그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 누리기, 새로운 것에 목매지 않기(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동일한 일과 속에서 새로움 찾기)는 가능할까? 그리스도 안에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