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은 양력 11월 26일인데, 올해 생일에 와이프는 털 달린 어그 슬리퍼를 깜짝 선물했다. 신어보니 신발이 작다. 와이프가 주안이 데리고 처가에 가 있는 동안 난 할머니와 어머니 모시고 신세계 하남점에 갔다.(2016.11.30.) 스타필드 쇼핑몰 구경시켜 드릴 겸 신발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PK마켓과 이마트트레이더스, 스타필드 쇼핑몰을 구경했고, 신발은 못 바꿨다. 다른 사이즈가 없었다. 환불도 못 했는데 환불하려면 결제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결제카드를 가지고 스타필드에 다시 갔다.(2016.12.5.) 이번에 동행자는 민수다. 민수는 액션캠을 백팩 어깨끈에 달고 왔고, 민수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곤 민수를 피해갔다.
신발을 환불하고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이토피아'에서 '문배동육칼'을 먹고 후식으로 '스무디킹' 망고스무디와 '앤티앤스' 치즈스틱을 먹었다. 쇼핑몰 여기저기 구경하다 민수 아는 사람이 '스포츠몬스터'에서 알바한다고 해서 그를 보러 갔다. 민수가 그에게 문득 말했다. "몇 시에 끝나? 집에 같이 가자." 졸지에 일행이 한 명 늘었다. 그는 22시에 끝났고 우리는 1층 '위드미' 편의점에서 보기로 했다. 덕분에 스타필드 영업종료 분위기를 경험했다.
이 날은 월요일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고, 22시가 넘어 스타필드를 나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퇴근하는 종업원들로 보였다. 민수 친구(나이는 많이 차이나지만 편의 상 친구로 호칭)를 기다리는 동안 스타필드 외벽에 수많은 작은 금속조각들이 붙어 있고 바람이 불면 이 작은 조각들이 바람따라 춤추듯 움직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민수 친구를 만나고 우린 귀가했다. 그들은 1번 버스를 타러 스타필드에서 조금 떨어진 정류장으로 행했고, 난 23번 버스를 타러 신세계 앞으로 걸어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일을 마친 직원들이 눈에 띈다. 퇴근하는 종업원들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20대 같다. 정규직원이 아니라 알바도 있는 것 같다. 매장 마감 업무를 맡은 젊은 직원들.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달이면 37살이 되는 아기아빠 강호중이 이들과 같은 입장이라면 어떨까? 20대 초중반 젊은 친구들의 일자리 틈바구니에 끼어든 30대 후반의 가장. 내게 이 일은 생존의 최종수단일 것이다. 그러면서 삶의 고단함과 그로 인해 미래를 볼 수 없는 비전의 상실감에 고통스러워하지 않을까?
☞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피곤하다. 밤 10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려니 당연히 피곤하다. 하지만 그들은 고소득자가 아니다. 소비를 충분히 향유하지 못한다. 22시 퇴근이면 다음날 오후 출근이거나 오전 늦게 출근할 수도 있다. 소득이 적기 때문에 그 시간에 지출이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없다. 버스에서 친구와 통화해서 술약속을 잡는 젊은이를 봤다. 고작 해봐야 그거다. 퇴근 후 친구들과 어울리고 다음날 또 다시 출근하는 일상. 퇴근 후 시간을 풍요롭게 활용하기 힘들다.
청소년(혹은 청년)기의 주안이가 방학을 맞아 알바나 파트타임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될 때, 사회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느끼고 어른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같이 근무하는 또래(혹은 형 누나들)와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맡겨진 일에서 책임감을 찾을 것이다. 그 일의 가치와 요구되는 역량, 자신의 흥미와 커리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눈 앞의 일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부모된 입장에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잠깐 하는 일인데 니 인생을 전부 거는 거 같구나.", "이 일이 니 평생의 일이 될까 걱정이 된다.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더 찾아보지 않으렴?", "알바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새벽 늦게까지 놀고 낮에 자고 오후부터 밤까지 또 알바하고, 알바하는 동안 생활이 이렇게 반복된다면 알바로 인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거 같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아니면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
내가 꼰대가 되려나? 저소득 낮은 질의 비정규 일자리에 매몰된 젊은 세대가 처한 위험은 비전의 상실, 생활의 피폐화다. 여기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여가를 즐긴다. 노동의 질에 따라 여가는 삶을 더 고착화시킨다. 돈이 없는 저소득자는 고급스포츠와 문화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없다. 자기계발도 어렵다. 그의 즐길거리는 고작 PC방 밤샘 정액제 요금 정도의 수준이다. 비극이지만 사실이다. 생활의 피폐함를 저당잡히고 즐기는 저렴한 여가를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은 누구나 여기를 즐긴다고 한 말은 이 때문이다. 독한 사람, 공부밖에 모르는 고시생(공시생), 당장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슨 일인지 알고 다른 데 관심 빼앗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능하다. 이들은 저소득 여가의 늪에서 나올 수 있다.
여가는 관심을 두는 데서 출발하는 데 너무 많은 곳에 관심을 빼앗기지 않기를 원한다. 산만한 관심을 지양한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자기 부인(self-denial)'이 나온다. 자기 부인의 영역을 혼자 있을 때, 나 자신에 대한 자기 부인으로 보고 묵상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되었다.
- (기본전제) 내 안에는 선한 게 없다. 세상유혹 유흥을 찾아 나서지 않기
- 물건 구입 등 쓸데없는 데 관심두지 않기
- 새기, 예배(수요 금요 주일 등), 기도 등
- 독서
관심 자체를 예배와 기도에만 두고 쇼핑, 핸드폰 인터넷 등에 두지 않는 방법은 어떨까? 출퇴근 시간에 핸드폰 보지 않고 책을 보려는 의도적인 습관 만들기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작년(2015년)에 19권 읽었고, 올해는 12월 17일 현재 23권째 읽고 있다. 출퇴근시간 지하철에서 주로 읽는다.
위에서 논의한 정도로 저소득층은 아니지만 난 여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단조로운 삶을 추구하며 그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 누리기, 새로운 것에 목매지 않기(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동일한 일과 속에서 새로움 찾기)는 가능할까? 그리스도 안에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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